도선사 마애석불

지 정 번 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
지정연월일 : 1977년 9월 5일
시      대    : 조선시대
규모/양식  : 불상 높이 8.43m
재        료  : 화강암
소유 및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도선사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로173길 504

 
도선사 석불은 북한산 중턱에 위치한 도선사의 대웅전(大雄殿) 뒤편에 있는 높이 20m 정도의 커다란 바위 면에 얕은 부조로 새겨져 있는 거대한 마애불입상이다. 현재는 청동으로 된 장방형의 보호각 안에 보호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있다. 도선사는 통일신라시대인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의해 1천년 후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이 다시 일어날 것으로 예견되는 이 곳에 절을 창건하고 큰 바위를 손으로 갈라서 관음보살상을 새겼다고 하는
 창건설화가 전해오고 있으나 이 마애불상은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도선국사는 풍수지리설에 밝은 통일신라 말의 승려로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의 중이 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문성왕 8년(846)에는 곡성 동리산(桐裏山)에 있는 혜철(慧徹)을 찾아가서 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뒤 850년에는 천도사(穿道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그 뒤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 옥룡사(玉龍寺)에 머물면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72세에 이르러 돌아가시자 효공왕으로부터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칭호를 하사
 받았으며 옥룡사에 징성혜등탑(澄聖慧燈塔)을 세웠다. 이와 같이 도선이 산천의 지세를 점쳐서 명당으로 예견한 자리에 절이나 탑을 세우는 비보사탑(裨補寺塔)은
 고려시대 초기에 특히 유행하였다.

도선사에 대해서는 그 외 다른 기록들이 남아있지 않아 절의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철종 14년(1863)에 김좌근(金左根)에 의해 절이 중수되면서 칠성각을 새로 건립하였으며 고종 14년(1887)에는 임준(任準)스님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층 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19세기 중엽 이후, 혜명(慧明)에 의해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들이 중창되었고 1904년에는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된 바 있다. 근래 청담스님이 주지가 되면서 사세가 확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大雄殿)을 중심으로 호국참회원(護國懺悔院)ㆍ백운정사(白雲情舍)ㆍ명부전ㆍ삼성각ㆍ요사채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 마애불상의 머리는 소발(素髮)로 표현되었고 그 위에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얼굴은 넓은 편으로 이목구비가 큼직하며 어깨와 거의 붙어 있는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각이 진 양쪽 어깨를 덮고 있으나 가슴 밑으로 몇 개의 크고 둥근 원을 그리며 길게 늘어진 옷 주름은 얕은 선각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가슴 위로 새겨진 ┛자 모양의 띠는 내의(內衣)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배 앞에 놓고 손가락을 약간 오므리고 있다.

이 도선사 마애불상은 전반적으로 입체적인 표현이 거의 없는 밋밋한 원통형의 형태로 토속적인 얼굴의 모습이나 간략한 옷 주름 표현 등에서 이 절이 창건된 통일신라 말의 불상으로 보기에는 어려우며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민간신앙에 의해 조성된 조선시대 마애불상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출처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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